top of page
상실의 시대
​@시학(Dshu_TAE)

※분량 및 날조 주의. 평행세계, 고딩 지우, (멀쩡한) 3인자 도강재 등장.

 

 

 

D-365

 

헤어지자. 

 

왜요? 이별 예행연습.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 단명할 팔자래. 아저씨 그런 것도 믿어요? 사실이잖아. 

 

1년만, 딱 일 년 만 헤어지자, 우리. 

 

 

 

 

 

D-358

 

아니, 사람이 어떻게 진짜 안 나타나요? 헤어지자는 말하면 다인가. 나는 거기에 동의도 안 했는데 이러는 게 어딨어요? 가끔 연락 안 된 적 많았는데 그런 말하고 난 다음이니까 불안하잖아요. 아저씨는 뭐가 문제에요, 진짜? 내가 얼마나 많을 걸 바란다고 그래요. 매정하게 그러지 마세요.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좀 해주세요. 

 

 

 

D-350

 

걱정이 앞서는 우리 사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요. 그치만 이게 우리잖아요. 스쳐가는 얼굴이라도 좋으니까 한 번만 나타나주면 안 돼요? 왜 본인이 하던 일까지 다른 아저씨들한테 넘겼어요? 전에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게 좋다고, 믿음이 안 간다고 꼭 직접 와놓고서는 이제 와서 이러는 게 이해되지 안 돼요. 아저씨는 불안하지 않아요? 내가 다른 사람의 경호를 받아도 괜찮아요?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그러지 않아요? 

 

 

 

D-346

 

답장이 안 오니까 너무 지쳐요. 혹시 번호까지 바꾼 거 아니죠? 나는 답장 기다린다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보는데 아저씨는 아니죠. 그게 너무 억울해요. 바쁜 거 알아서, 문자 많이 보내는 거 싫어하니까 나는 이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데 언제나 여유로운 그 얼굴이 싫어. 아저씨라면 모든 게 좋았는데 오늘부터 그건 싫어요. 하루하루 싫어하는 점 하나씩 적립할 거예요. 기대하세요. 일 년이 지나면 내가 좋아하는 게 아저씨가 아닐지도 몰라.

 

 

 

D-330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거, 나만 매달리는 거라는 거. 전부 받아들이려고요. 계속 부정했는데 이제 안 되겠어요. 그래도 계속 매달릴래요. 계속 문자 보낼래. 이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다 아저씨가 나쁜 거니까. 넘치는 메시지 알아서 감당하세요. 

 

 

 

선생님이 그러던데 일기 쓰는 게 도움이 된데요. 매일매일 써야 하는 거 아니니까. 한 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일상을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도 일기나 써볼까 해요. 여긴 일기장이 아니지만 어차피 내 메모장 신세니까 괜찮잖아요. 그런 줄 알아요. 어차피 얼굴 못 보는 건 피차 똑같잖은데 그냥 만족하고 사세요. 나만 억울한 건, 체념하는 건 싫으니까.

 

 

 

D-325

 

오늘은 방학식을 했다. 겨울이라고 날이 춥다. 바람이 매섭다. 애들과 떡볶이를 사 먹었다. 에라, 기분이다 하고 내가 쐈다. 애들이 웬일이냐고 떠들었다. 무슨 일 있던 거 아니었냐고 기분 안 좋아 보였다고 그런 얘기를 해줬다. 애들도 내 기분을 아는데 아저씨만 모른다. 겨울은 춥고 나는 또 외롭다. 정신 팔려 있을 곳이 없다. 하얗게 하늘에 날리는 입김처럼, 입가에 머무는 말을 날려보냈다. 

 

 

 

아저씨는 안 추워요? 전처럼 정장에 한 벌만 입고 다니는 거 아니에요? 못해도 코트 정도는 걸치라니까 또 말 안 듣죠. 걱정하는 사람 생각 좀 하세요. 조폭은 감기에 골골대는 거 아니라면서 그러면 잘 입고 다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인간이 아닌 척 그만하기. 아저씨도 열에 쓰러지는 사람이면서 괜히 멋 부린다고 그러지 말기. 요즘 애들도 그렇게 가오 안 찾아요.

 

 

 

저는 겨울이 너무 추워요. 혼자서 보내는 겨울은 언제나 외롭기만 해요. 겨울바람이 매서운데 올해는 정말 그 바람을 막아주지 않을 생각인가요? 제가 동사해도 좋아요? 아, 이런 협박에는 눈도 깜빡 안 하려나. 용기 없이는 죽을 수도 없으니까. 나는 괴로움 속에서도 살아가겠죠. 누가 함께 하지 않는 한 나는 영원히 겁쟁이일 생각이에요. 용기를 심어주려거든 돌아오세요. 헤어지자고 했던 그 말, 지금까지의 어리석음, 내가 다 용서할 테니까.

 

 

 

 

 

D-324

 

방학이라서 오늘은 오랜만에 푹 잤다. 할 일이 별로 없다. 거실에 나와서 앉아서는 멍이나 잔뜩 때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방학은 역시 주말이랑 차원이 다르다. 쉬는 건 똑같지만 마음가짐이 다르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계획도 세우지 못했는데 시간은 빠르고 막 그런단 말이지. 복싱하러 학원에 가는 거 말고 한 일이 없어서 진짜 편하게 지냈다. 방 청소도 좀 하고 그랬다. 아직 날이 추운데 집에나 있어야지 싶다. 방학을 즐기는데 중요한 건 일단 쉬는 거지.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쉬고서 생각하는 거야. 

 

 

 

성인은 방학도 없는데 어떻게 버텨요? 휴가 그거 너무 짧지 않나. 푹 쉬고 싶은 그런 날이 있을 거 아냐. 아저씨는 그런 날 없나. 아니면 자리가 있으니까 마음대로 하루 쉬고 그래요? 휴일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보내요? 아저씨도 느긋하게 일어나고 쇼파에서 진득히 멍때리고 그런 일상을 보내나요? 늦잠은 자고 하나요? 워커홀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을 읽나요? 커피를 내리고 마시면서 하늘을 바라볼 줄을 아나요? 정말 당신의 휴일은 어떤 모습인가요? 들려주세요. 나는 아는 것이 없어서 상상에 부칠 뿐이에요. 이름이 아니라 다른 것도 알려줘. 나는 아저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사랑은 어렵지 않으니까, 하게 해주세요.

 

 

 

D-323

 

아저씨의 휴일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휴일에 같이 놀자고 해야지. 아저씨는 그런 거 질색할지도 모르지만 놀이공원도 가자고 할 생각이다. 귀여운 머리띠도 쓰고 재밌게 놀다 와야지. 복싱하러 가는 거 빼고 딱히 일정이 없다. 뭐라도 해야지 싶은데 집에 있는 게 없다. 체육관에서 하루를 다 보내볼까 고민 중이다. 실력도 늘고 괜찮지 않나. 공부보다 운동이 끌리는 건 천성이다. 운동이 더 재밌는 걸 어떡해. 체대를 쓰겠다고 상담도 했다. 진로 이 정도면 정해지지 않았나. 아저씨가 하도 뭐라고 해서 거기는 꿈도 안 꿔요. 걱정하지 마세요.

 

 

 

경찰도 생각해 봤는데 안 하려고요. 성적도 조금 그렇지만... 아저씨들이랑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게 언더커버, 스파이, 그런 직책이라도. 명목뿐인 적대관계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편하게 살래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저씨가 원하는 그대로. 그게 편할 테니까. 이거는 말 들을게요. 다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알아요. 애취급 하는 그게 싫은 거지. 아저씨들이 싫은 거 아니니까. 청소년의 사춘기를 너무 넘겨집지 마세요. 

 

 

 

D-322

 

체육관에서 지내기로 했다. 혼자서 쓸쓸하다고 했더니 관장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여자라고 얕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딴 거 신경 안 쓴다. 관장님이 섬세하게 봐주시고 아는 형님들도 있으니까 괜찮다. 체력을 다 빼고 집에 들어가면 딴 생각 없이 푹 잘 수 있겠지. 겨울바람이 매서워서 서러워진다. 눈물바람은 아니지만 괜히 울적해지고는 한다. 겨울에 감성적이라는 법은 없었는데 외로움이 계속 타고 오르는 걸 무시할 수 없다. 아저씨만 만나면 다 지울 수 있을 거 같은데 와줄 생각 없죠?

 

 

 

외로움을 이기는 법을 배우려고 해요. 전에는 언제나 혼자였는데 한 번 온기를 느끼니 더 춥게 느껴지네요. 그전의 외로움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찬기가 목을 타고, 손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져요. 죽을 용기 같은 거 없는데 꼭 죽은 거 같아요. 이런 기분 아세요? 아저씨는 왠지 알 거 같아서 더 이상 말 안 할게요. 또 반복하지만 다치지 마세요. 제 허락 맡고 다쳐요. 아프다고 투정 부려도 좋아요. 부디 아프다고 소리 내는 법을 배우세요. 뭐든지 괜찮다고 삼키는 법말고. 괴물이라고 자조하지 마세요. 우린 아직 사람이에요.

 

 

 

D-321

 

오늘 스파링 하다가 눈에 멍이 들었다. 순간 한눈을 판 거였는데 거하게 맞았다. 상대 주먹이 그대로 꽂혔다. 기침이 나올 정도였는데 지는 건 질색이라 말리는 관장님을 무시하고 계속 싸웠다. 결국 이겼는데 멍이 예쁘지 않게 들었다. 재수가 없는 날이다. 내 가오 어쩔 거야. 허세 잔뜩 부렸는데 모양 빠졌어, 진짜. 체육관에서 지내는 건 바뀌지 않지만 관장님이 멍 빠질 때까지 유산소 위주로 하라고 하셨다. 복싱은 스파링이 진짜인데 섭섭하다. 멍 빠지는 약 내일 사 와야지. 딴 생각 하지 않기, 주의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저씨 다칠 거 내가 대신 다친 거라고 생각해요. 아저씨 상처는 멍같이 자잘한 상처가 아니겠지만 제가 대신 가져간 거니까. 안 다치기 약속해 줘요. 이 멍이 빠지기 전까지는 꼭. 죽음을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말이 떠오르고는 해요. 마냥 행복만 가지고 살기에는 인생이 퍽퍽하기 그지없던 터라, 최악을 먼저 떠올리는 버릇이 든 거 같아요. 오늘까지만 걱정할게요. 다음부터는 행복을 빌어줄게. 죽지 마세요, 제발.

 

 

 

D-320

 

어제는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더니 눈에 멍이 더 심해졌다. 다리도 아니고 눈인데 파랗게 피멍이 들어서 보기에 좀 그렇다. 눈도 좀 부은 거 같고 약국에 가서 안대를 하나 샀다. 오늘 하루 그거를 하고 다녔다. 진짜 가오가 죽는 거 같아서 체육관에서 안 있고 밖으로 나왔다. 유산소 겸으로 산책도 잔뜩 하고 낮잠을 좀 잤다. 그냥 쉬는 날인 걸로 하기로 했다. 복싱 말고 할 게 있나 찾아보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다. 다른 운동이나 탐이 나는 거 같다. 고민 좀 깊게 해봐야지. 할 거면 진득하게 하는 게 최고니까.

 

 

 

여기다 문자 보내도 회장님한테 연락 가요? 아님 직접 연락드리는 게 좋으려나. 지금 필요한 건 아니고 나중에 배우고 싶은 거 찾으면 그때 연락드리려고요. 대답 똘마니들한테 전해서 알려주세요. 오늘 아침에 멍 빠지는 약 걸어둔 것도 아저씨가 시킨 거죠? 이거 확인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사진이라도 받아두고 있는 건가. 모르겠네요. 걱정이 된다는 얘기겠죠? 자의든, 타의든. 계속 그렇게 지켜봐 주는 걸로 해요. 안 끝난 사랑이라는 확신이 들게 해주세요. 전 어리광 계속 부릴게요. 아저씨는 아닌 척 걱정해 주세요. 

 

 

 

D-319

 

새벽에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웠다. 사실 넘어질 뻔했는데 민첩하게 균형 잡아서 안 넘어졌다. 지켜보던 검은 양복들이 골목 사이에서 움찔대는 게 보여서 웃겼다. 저 안 넘어졌어요. 마음 졸이지 마세요. 멍이 좀 빠지긴 했는데 아직 모양이 빠진다. 오늘은 대충 산책을 뛰고 체육관에서 혼자 연습했다. 사람이 없어서 조용한 게 좋았다. 날이 부쩍 추워진 게 원인이지 않나 싶다. 추울수록 운동을 해야 하는 법인데 사람들이 뭘 모른다. 그러니까 실력이 안 늘지. 차리는 것만 많아서 좋겠어요, 하고 앞에서 말하고 싶은데 그냥 관뒀다. 물들고 싶은 생각 없다.

 

 

 

아저씨는 눈 오는 거 봤어요? 새벽에도 일하니까 봤을 거 같은데 예뻤어요? 겨울에는 비 안 와서 다행이다. 아저씨 비 오면 힘들잖아. 회장님은 몸이 쑤셔서 그런 거라고 얘기하던데 그거 맞아요? 흉터 난 자리가 아파요?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선례가 되어버린 거죠. 나는 감히 아저씨의 안식처가 되고 싶어요.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너무 주제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기다리다 지치면 교회라도 가서 내가 대신 선처를 빌어볼 테니 부디 행복할 생각만 하세요. 서있는 곳이 지옥이라도 포기하지 않기로 해요. 나랑 같은 곳 가기로 했잖아요. 마지막까지 얼굴 보기로 했잖아요. 나만 버리고 가지 말아요. 

 

 

 

 

 

D-318

 

쉽게 떨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말기. 그렇게 쉬운 사랑이 아니었음을 기억하기. 나 잊지 말기. 함께 할 거라고 약속해 주기. 다시 얼굴 비추기. 한 번쯤은 답장해 주기. 몸조심하기. 걱정은 티나게 하기. 같이 휴가 보내기. 아프다고 말하는 법 배우기. 괜찮다는 말은 접어두기. 행복한 미래 그리기. 그 미래에 나도 껴주기. 도망가지 않기. 도망가도 다시 돌아오기. 나 버리지 않기. 첫사랑 쉽게 무시하지 않기. 보고 싶다고 꼭 적어주기.

 

 

 

정태주가 지킬 거 진짜 많아요. 다 지키도록 해요. 그렇게 살다가 얼굴 보기로 해요. 밤새우지 말고 잠도 자고 그래요. 나는 잘 자고 있으니까. 아저씨도 부디 잘 자요. 꿈에서 만나.

D-317

✉ 아저씨

문자 그만 보내.     am 07:46

D-310

 

답장이 겨우 그거야? 진짜 너무하네. 사람 순정 가지고 놀지 마세요. 문 앞에 다이어리 걸어둔 거 쓸 생각 없으니까. 체념하세요, 아저씨. 체육관에서 지내느라 핸드폰 무시하고 살았더니 그 타이밍에 연락이 오네. 차라리 타이밍 좋았어요. 저도 바쁠 예정이니 착각하지 마세요. 

 

 

 

사랑에 코 박고 죽을 생각이니 그것도 걱정 말고. 연락 없다고 제 사랑 안 죽어요. 사람은 계속 붙여두고 걱정할 거면서 차가운 척 그만해요. 그냥 보고 싶다. 그 한 마디면 되니까. 첫사랑은 평생 안 잊힌대요. 누구를 다시 좋아해도, 결혼을 해서도 생각나고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전 다른 사람 사랑할 생각 없으니까. 안 잊어요. 사랑을 다른 사람으로 잊는 취미 없어요. 만들 생각도 없고 제 사랑 죽으라고 기도하지 말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둘 다 가망 없는 건 똑같으니까. 나는 아저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맨날 불가능하다고 초 치잖아. 

 

 

 

네, 네. 사랑해요. 그래요, 사랑한다고 혼자서 중얼거려 주세요. 혀 밑으로 감추고 나중에 만나서 전해주세요. 

 

 

 

D-293

 

숫자가 변했으니 연락해요. 죽지 않고 잘 사는 중입니다. 부디 잊지 마시고 다치지 마시길. 편지는 받아주시나요? 회장님한테 안부 좀 전해주시고 도강재한테 얼굴 좀 보자고 전해주세요. 고삼 되기 전에 꼭 찾아오라고 전해주기. 내가 아저씨랑 헤어졌지, 지랑 헤어졌나. 우리 우정이 개털이냐, 네 머리가 개털이지. 아직 염색에 죽고 사나 몰라. 죽지 않았으면 얼굴 꼭 비춰라. 

 

 

 

아, 저 도강재 번호가 날아가서 대신 좀 전해주세요. 걔 쥐어박지는 마시고 진정하시길 바라요. 우리 둘 우정에 아저씨가 끼어들 자리 없어요. 근황도 추가로 전합니다. 복싱에 새로 시작한 사격 나름 재미있어요. 이거 스트레스 풀기에 진짜 좋아요. 과녁에 미운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딱이야. 죽으라고 제사 지내는 거 아니니까 오해 마시고 제 생각이나 더 하세요. 손 트지 않게 장갑 끼고 다니기. 정장에 잘 어울리는 가죽 장갑도 있잖아요. 몸 사리고 그래요. 늙은 거 티 내지 마.

 

 

 

D-291

 

자기가 안 찾아와놓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 무슨 심보지. 오늘은 도강재 맘껏 혼내세요. 미성년자 앞에서 술 마실 생각하던데 아주 못 배웠어. 낮술이 취미도 아니고 무슨. 하루 종일 징하게 놀기는 했네. 이런 것도 안 해봤냐고 물어보는 거 진짜 빡쳐. 아주 매를 벌어요 진짜.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해서 기분이 좋기는 하네. 기분 전환 제대로 했다. 연락하고 바로 올 줄은 몰랐는데 한가하지 않다더니 하여튼 말은 잘 들어. 번호 받아서 이제 안 전해주셔도 돼요. 알아서 연락할게요. 다음에는 고기 사달라고 해야지. 저 보러 간다고 하면 용돈 두둑이 주세요. 저 고기 많이 먹을 수 있어요.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연락하세요. 도강재 그만 갈구시고. 열심히 올라왔더니 혼나는 게 다라고 그렇게 한탄하더라고요. 둘이서 그냥 다시 만나라고 보기 안 좋다고 얘기도 해주던데 우리 강재 입이 아주 싸다, 그죠? 이거는 혼내지 마세요. 마음에 드니까. 부하 그만 갈구고 일 열심히 하세요. 바쁘다면서 혼낼 시간은 있나 봐. 그럴 시간에 얼굴 좀 비추고 그러지. 난 사진도 없는데. 매번 허공에 대고 그려보기만 해요. 뭐라도 남기고 가지. 핸드폰에 몰래 찍은 뒷모습만 한가득이에요. 네, 얼굴 보고 싶다고. 아주 괘씸해요. 반성하고 살아요.

 

 

 

요즘도 일하느라 밤새운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로봇이 아니니까 쉬기도 하고 잠도 주무세요. 온기 없는 집이 싫어도 버텨야죠. 저도 버티고 있는데. 자기가 자초한 외로움에 혼탁하게 흐려지지는 마요. 찬 바람 그만 맞고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는 것도 금지.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오늘은 자는 걸로. 꿈에서 보자는 약속이 의미 있게 해주세요.

 

 

 

D-289

 

도강재 생일, 잘 챙겨주세요. 만나서 곧 생일이라고 어찌나 노래를 부르던지. 거기도 떠들썩하겠지만 혹시나 하고 새벽에 연락 보내요. 정장 아저씨들이 케이크도 준비하고 걸걸하지만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겠죠. 나름 그런 사랑이라도 받아서 좋겠네. 저는 방금 전에 연락 보냈어요. 고맙다고 이모티콘 쏘고 그러더라고요. 선물은 모은 용돈으로 작게 준비했는데 좋아하는 게 꼭 애 같았어요. 가끔 저보다 어려 보인다니까. 도강재한테 선물 자랑해달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준비한 선물 궁금하다. 알아서 잘 준비했겠죠. 걱정 말고 기대할게요.

 

 

 

아저씨 생일 모르는데 회장님한테 연락하면 알려주시겠죠? 도강재도 알려나. 내일쯤에 연락해야지. 같이 생일을 보내고 싶은 로망이 있어요. 나중에 커서는 직접 케이크 준비도 하고 하루 종일 둘이서 있고 싶어요. 누구보다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 날인데 나랑 있으면 충분하잖아요. 선물도 잘 준비할 테니 걱정 말고. 그 하루만 저 빌려주세요. 알차게 잘 쓰고 반납할게요.

 

 

 

아저씨의 모든 게 궁금해요. 그 전부를 알려주세요. 혼자서 알고 있을게요. 저는 입 무거워요. 그거 들어줄 사람도 없고 말해줄 생각도 없어요. 아저씨는 저만 알고 싶어요. 저만 알래요.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D-281

 

바빠지기 전에 또 한 통. 미리 알아두면 좋은 정보를 전합니다. 새학기가 돌아오면 바쁠 예정이에요. 고삼이 벼슬이라고 학교 학원 집 반복하느라 바쁘답니다. 하루가 48시간이면 좋을 텐데. 허무맹랑한 소리인 거 알아서 자중할게요. 3월이 되면 아저씨도 바쁜가요? 방학이 없으니 언제나처럼 바쁘다고 하실 건가요? 바쁜 와중에도 잊지 말라고 생존신고를 또 보냅니다. 일기는 이제 안 쓸래요. 여기다 쓰는 건 재미없어. 계속 궁금한 마음으로 사세요. 멀리서 찍은 사진이나 봐라. 네, 보세요. 

 

 

 

일년이 지났다는 게 생생해지는 건 역시 다시 학교를 갈 때가 아닐까요. 학생인 저는 그래요. 별거 없는 인생에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를 더해서 억지로 인간관계를 늘리곤 합니다. 늘리겠다고 늘어나는 게 아닌 제 마음은 아직 좁아서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요. 심심하지 않게 친구를 사귀기는 하겠죠. 탈없는 1년이 지나가기를 또 빌어요. 끝은 또 다른 시작, 무슨 단어라도 욱여넣어서 청춘 스토리가 완성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저씨 자리도 대기하고 있으니 돌아올 생각이나 하세요.

 

 

 

또 다른 안부, 회장님께 문제집 사라고 돈 보내주신 거 잘 받았다고 전해주세요. 고삼이니까 공부 조금은 해볼게요. 대학 가서 새내기 라이프 즐기도록 할게요. 뼈 시린 추위에서 벗어나 봄이 다가와요. 아저씨의 봄 제가 하고 싶어요. 사실 사계절 전부 탐나는데 욕심은 많이 안 낼게요. 어차피 다 내 자리인 거 아니까. 코트 말고 따뜻한 옷 입어요. 추위에 떠는 게 제일 가오 떨어지니까. 

 

 

 

D-257

 

보고 싶다.

 

 

 

 

 

D-225

 

사랑해요, 보고 싶어. 그게 다야. 죽지 않고 기다릴 테니까. 잊지 말고 생각해 주세요. 

 

 

 

 

 

D-200

 

간밤에 비가 내렸나 봅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

 

 

 

그대여,

 

멀리서 으르렁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

 

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

 

 

 

밤새 내린 비, 이정하.

 

 

 

저 책 읽기 시작했어요.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세요. 모든 사랑시가 다 우리처럼 보여서 나도 중증인가 싶어요. 조금은 똑똑해져 볼게요. 억울하지 않게 아저씨도 똑같은 마음으로 살아요. 떠다니는 글자에도 내 생각 하기를. 

 

 

 

D-184

 

지는 해를 보며 당신의 생각을 합니다. 떠오른 달을 보며 당신의 생각을 합니다. 많은 별 가운데 초라한 달을 보며 당신 생각을 합니다. 무너진 하늘을 보며, 끝을 향해서 달리던 시곗바늘을 보며 당신 생각을 합니다. 따뜻해진 계절을 쫓지 못하고 아직 차가운 심장을 끌어안고 나는 당신을 떠올립니다. 혼자서 행복하신가요?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시나요? 따사워진 햇살에도, 간혹 부는 바람에도 몸이 시려옵니다. 감각이 망가진 걸지도 모릅니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웃으시겠죠? 상관없습니다. 저 없이도 잘 웃고 지내나요? 저는 당신의 상상을 하는 순간에만 웃고는 합니다. 시간은 잘 가던데, 아직 당신은 없고 우리가 약속한 날을 아직 멀었네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간에도 계속 당신이 떠올라서 웃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멀쩡한 일상이 사치처럼 느껴져요. 당신이 없는 일상은 소소한 행복이 한 스푼 겨우 들어갔을 뿐 진정 행복하지 않습니다.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입 밖으로 나갈수록 아픈 말을 줄곧 내뱉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겨우 그거예요. 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당당하게 1년이 지나면 당신을 싫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장담했는데 가능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항상 당신이 보고 싶고 보지 못해서 아픈 날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삼킨 사랑이 아파요. 지독한 상사병이 심장을 삼키고 뱉어내지 않아요. 살려주지 않을래요? 저는 사랑합니다. 아무리 부정당해도 사랑합니다. 제 첫사랑부터 마지막 사랑까지 당신에게 바칠 테니 도망가지 말아 주세요. 순정을 짓밟는 잔인한 짓은 그만해주세요. 죽지 않는 사랑을 끌어안고 있겠습니다. 돌아오세요, 나의 사랑.

✉ 아저씨

시간 늦었다. 자라.  am 04:21

새벽에, 그 시간에 취해서 미쳤었나 봅니다. 새벽에 깨어있는 게 당연한 사람이라 이미 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잊어주세요. 주제넘는 어리광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두 진심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순간순간 당신이 떠오르고 보고 싶어요.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사랑해요. 저를 잊지 마세요.

 

 

 

연락을 남긴 김에, 오랜만에 근황을 남겨요. 벌써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가 되었네요. 또 한 달이 지나고 이제 반년이 지나게 되겠죠. 시간은 언제나 사람들을 두고 흘러가는 거 같아요. 이번 년에는 시간이 흐르는 게 그리 슬프지 않는 건 아저씨 탓이란 거 알고 계시죠? 새학기에 들어서 새로운 친구를 조금 사귀었고 시험 하나를 뛰어넘었어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멀리서 응원하고 있나요? 목표가 생겼으니 열심히 달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도망가 버린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새벽이 더 차고 시리지만, 여름이 햇빛이 몸을 통과하지 못한 채 피부에 상처를 내지만 고삼에게 사랑은 독이라고들 하니까요. 제게 독이, 약점이 되기 싫으신 건가요? 우습게도 너무 늦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건 죄악에 불가해요. 

 

 

 

제가 없는 겨울은 잘 보내셨나요? 시린 추위를 견디고 감기에 걸려서 혼자 앓지는 않았나요? 정장에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았나요? 둔해진 몸을 알아채준 사람은 없었나요? 하나의 휴가라도 챙기고 지내셨나요? 봄의 꽃은 많이 보셨나요? 벚꽃이 무척 이쁘던데 모두 보고 지나갔나요? 4월의 순정을, 청춘을 즐기셨나요? 내리는 봄비에 아프지는 않았나요? 아픈 몸을 어디에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 입술만 짓이기셨나요? 다가오는 여름에 견딜 준비는 되셨나요? 죽지 않고 살고 있나요? 거기는 행복한가요? 하지 못한 얘기가 많아서, 듣지 못한 얘기가 넘쳐서 질문이 쌓여갑니다. 이렇게 일 년이 지나고 나면 더 많은 질문이 쌓여있겠죠? 내가 없던 아저씨의 사계절이 궁금해요. 내가 없던 날들의 아픔이 궁금해요. 다른 감정까지 모두. 다 적어서 담아서 들려주세요. 그날을 고대하며 살게요. 

 

 

 

D-172

 

다가오는 여름이 따스하지 않은 건 다 내 문제겠지. 억지로 몸을 축내고 잠에 드는 건 고질병이겠지. 시곗바늘을 바라보다 잠에 드는 건 없앨 수 없는 버릇이겠지. 다정하게 눈을 가려줄 손이 없다. 다정하게 안아줄 사람이 없다. 어디를 가든 외롭다. 혼자는 재미가 없는데 내 일생이 이렇다. 체념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잖아. 왜 나만 이리 외로워야 하는지. 끌어안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지. 삶의 무게를 기댈 안식처가 없는지. 하늘에는 비가 안 내리는데 내 마음에 비가 온다. 푹 잠겨서 익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벽이랑 내외하고 푹 주무세요. 새벽녘에 보내는 문자만 바로 보지 마시고. 잘 자요, 부디 꿈에서 만나는 걸로 해요.

 

 

 

D-150

 

마지막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대학 잘 가게 해주세요. 아저씨랑 빨리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다시 만나는 날 눈이 오게 해주세요. 신에게 빕니다. 부디 들어주세요.

 

 

 

D-148

 

보내주신 초콜릿 잘 먹었어요. 비싼 거라 그런지 맛있더라고요. 시험 잘 보고 오겠습니다. 같이 응원하고 있죠? 저 믿어요. 

 

 

 

D-147

 

시험 잘 끝냈어요. 이제 방학 기다리면서 남은 공부 할 일만 남았네요. 이제 제법 날씨가 더워요. 살 타는 거 조심하시고 물 많이 마시세요. 열사병으로 병원 가는 거 분명 모양 빠집니다.

 

 

 

D-130 

 

여름방학 시작. 알차게 잘 보내기. 방학이라고 시간 낭비하지 말기. 복싱 대회 연습 열심히 하기. 잠을 푹 자되 너무 늦게 자지 않기. 에어컨 바람 많이 쐬다가 냉방병 걸리지 않기. 그렇다고 운동 열심히 하다가 쓰러지지 않기. 아직 안 끝난 거 잊지 말기. 간간이 공부하기. 수시 붙을 거라고 자만하지 않기. 

 

 

 

아저씨는 더위 무시하지 말고 조심하기. 싸우다가 다치지 말기. 내 생각 자주 하기. 가끔은 답장해 주기. 끼니 잘 챙기기. 새벽 지키지 말고 잠 좀 자기. 기타 등등. 아프지 말고 잘 지내기. 저 나중에는 편지도 쓸 거예요. 그거 받아주세요. 리베르 호텔 정태주 이사라고 이쁘게 적을게요. 내 이름은 윤지우라고 적을 건데, 싫으면 XXX라고 적고. 일단 받아준다고 약속하기. 

 

 

 

D-115

 

오늘은 도강재를 만났다. 여름방학인 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아 학생들 다 이맘때 방학인가. 하여튼 지도 오늘 여름휴가라고 날 끌고 다녔다. 갑자기 차에 실어져서 완전 놀랐다. 나 얘 면허 있는 것도 몰랐는데 운전하더라. 존나 웃겼다. 의외로 베스트 드라이버다. 다른 차가 운전 못하거나 끼어들 때마다 욕을 끈임 없이 해서 그렇지. 난 얘 분노조절장애라도 있는 줄 알았다. 나랑 하하호호 하면서 근황 얘기하다가 차가 끼어들면 욕을 그렇게 하니까. 이중인격인가 고민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에서 미친X로 소문나있다고 들었다. 내 앞에는 왜 정상인 거지. 일반적인 정상이 아니기는 한데. 관심 없고 말 잘 들으니까 됐어.

 

 

 

여름휴가 제대로 즐겨야 한다면서 워터파크로 끌고 갔다. 아침부터 쳐들어 온 거라 졸려서 차에서 한숨 잤더니 도착해있었다. 준비한 게 없어서 당황했더니 아저씨 카드를 훔쳐 왔다면서 저 앞에서 사라고 했다. 진짜 도라이인가 봐. 도강재가 표를 사는 사이에 나는 쇼핑을 했고 쇼핑이 끝나고 같이 들어갔다. 사실 워터파크 처음이라 신기했다. 바다가 아닌 물가는 처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음에는 바다에 가자고 했더니 주말에 오겠다고 윙크를 한다. 미친놈. 

 

 

 

기운이 빠질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진짜 도강재는 인생을 300퍼센트 즐기는 거 같았다. 워터파크 안 와봤을 줄 알았더니 자기는 친구들이랑 몇 번 와봤다고 했다. 아 얘 친구 많았지. 뒤늦게 생각났다. 파도풀이나 워터 슬라이드도 재밌게 탔고 즐거웠다. 오랜만에 즐거운 날을 보낸 거 같아서 좋았다. 도강재는 겉옷은 쿨하게 벗고 다녔는데 여자들이 아주 눈을 빛내더라. 나는 잘 모르겠던데 인생이 사람 꼬이는 편이구나 했다. 사람들이 계속 같이 놀자고 꼬시는데 둘 다 괜찮다고 거절하느라 혼났다. 종국에는 도강재가 꺼지라고 욕을 한 사발 했다. 실실 웃으면서 애인이라고 구라를 쳤었는데 계속 친구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열받아서 소리를 질렀다. 역시 이중인격인 거 같다. 사회화가 잘 된 미친놈인가. 금방 내 앞에서 다시 웃는데 미친개여도 이번에는 이뻐서 그냥 목 나간다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다. 둘 다 선크림 꼼꼼히 바르고 다녔다. 어디서 난 건지 선글라스도 줘서 잠깐 쓰고 다녔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도강재가 운전을 했다. 내가 면허가 없어서 대신 운전 못해주는 게 진짜 미안했다. 얘도 꽤나 지친 거 같았는데 진짜 미안했다. 휴게소에 들려서 아저씨 카드로 밥을 먹었다. 훔쳐 온 거 열심히 써야지. 아저씨 미안. 사실 안 미안. 금융 테라피 좀 할게요. 도강재는 잘 지냈다는 말과 함께 주로 신세한탄을 했다. 회장님이, 선배님이 자기를 부려먹는다고. 내가 아직 막내인 줄 아는 거 같다고 우는소리를 했다. 자기도 이제 3인자고 밑에 다른 조직원이 가득인데 섭섭하다고 그랬다. 아직 애이긴 한 거 같은데 가끔 어른 답기는 했다. 이런 한탄 같은 거 들어보면 일한다는 얘기니까. 나는 도강재가 성인이라는 걸 자주 까먹는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자주 봐서 그런 거 같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도강재는 오히려 편하게 대하라며 웃어댔으니까. 도강재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재미없는 인생에 가끔 오는 한줄기의 빛? 너무 거창한가. 재미있는 일상. 하여튼 그렇다고.

 

 

 

도강재랑 뭐해보겠다는 거 아니니까 인상 푸세요. 저는 아저씨뿐이에요. 하나뿐인 제 친구 그만 괴롭히시죠. 다음 여름휴가에는 같이 놀러 가요. 도강재도, 아저씨도 다 같이. 꼭 워터파크 가자는 거 아니니까. 우리 놀러 가요. 나는 바다가는 것도 좋아해요. 파도치는 소리 듣고 잔잔한 바다에 발 담그는 거 좋아해요. 여름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아저씨가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주세요. 계획 아저씨가 짜도 좋아요. 도강재한테 맡겨도 좋고 나한테 부탁해도 좋아요. 우리도 휴가 즐겨요. 평범한 추억을 잔뜩 만들어요. 사진도 찍고 행복이 계속될 것처럼 웃어요, 우리. 

 

 

 

아저씨의 여름휴가는 어떤 모습인가요? 워커홀릭 또 일하느라 바쁘기만 하신가요? 이번에는 좀 쉬라고 회장님이 내쫓지 않았나요? 아저씨의 방식으로 쉬세요. 놀러 가는 게 싫다면 에어컨이 켜진 방에서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요. 아저씨는 방에서 조용하게 보낼 거 같아요. 일하느라 못 잔 잠을 며칠에 몰아서 잔다거나 하루 종일 잠에 취해서 느리게 움직인다거나. 아니면 휴가에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하고 그러는? 아저씨의 휴가는 오늘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공유해 줄 수는 없을까요? 또 궁금한 게 많은 하루를 보내요. 다 뱉지 못한 질문이 뇌에 고이고 어느 순간 터질지도 몰라. 그럼 더 이상 괴롭지 않을까.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요. 마음 한구석에 아저씨가 살아요. 언제 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월세도 밀려놓고는 못 나간데요. 사실은 내가 나가지 말라고 붙잡고 있어요. 여기서 그냥 살라고 더 넓혀서 오겠다고 조르는 중이야. 절대로 못 나간다고 자물쇠를 걸고 가두어 볼까 생각 중이야. 어디로 가지 마. 날 떠나지 마. 당신마저 나를 놓지는 마. 네, 오늘도 보고 싶다고 전해달라네요. 심장이, 뇌가 전해달라고 했어요. 잘 들으세요. 추가로 사랑하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고백도 받아주세요. 윤지우씨가 전해달랍니다. 회신이 돌아오면 좋을 거 같다는데 안 되겠죠? 네, 새벽을 고요히 보내고 잘 자요. 오늘도, 오늘 또 사랑해요.

 

 

 

D-114

 

도강재 그만 구박하세요. 유치한 질투 관두세요. 계속 문자 와요. 선배님이 자기 괴롭힌다고. 휴가 보내는 애 부르지 말기. 어른이 진짜.

✉ 아저씨

사랑해보고싶어여기는지옥이야너는어디니지우야잘지내진짜잘지내그래나도보고싶다꼭다시만나자  pm 11:30

✉ 아저씨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오랜만에 연락이네요. 술이라도 마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길에서 자는 거 아니죠? 다른 사람이 알아서 챙기겠거니 해요.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내일 힘들어요. 일어나서 해장도 꼭 해요. 저도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 저는 나름 잘 지내요. 내 걱정 말고 본인 걱정이나 하세요. 

 

 

 

오랜만에 문자 받으니까 좋다.

 

 

 

D-111

✉ 도강재 (미친개)

야 미안하다. 재웠어. 쉬어라. 진짜 쏘리.  am 12:04

✉ 도강재 (미친개)

어제 재밌었어. 아침에 같이 해장할게. 걱정 노. 뿅.  am 12:06

주말에 오겠다더니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진짜 왔다. 도강재는 와서 또 그냥 끌고 갔다. 오늘도 직접 운전을 하고 갔다. 안전운전, 베스트 드라이버. 나름 인정할만했다. 가까운 바다에 간다고 신나했다. 바닷바람 맞으러 가는 거뿐이라고 준비 안 해도 된다고 웃었다. 얘는 휴가를 다 나한테 쓰나. 친구 많은 거 아는데 날 위해 주는 거겠지.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날은 뜨거웠지만 행복했다. 또 어디서 가져온 선글라스를 나눠끼고 웃었다. 청춘은 달콤하게 흐른다. 파도 소리가 듣기 좋았다. 발을 담근 바다가 기분 좋았다.

 

 

 

바캉스 휴가 방학 알차게도 보낸다. 파라솔을 빌려서 둘이서 앉아있었다.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닷가를 걸었다. 별거 아닌 일상은 행복하다. 아저씨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전보다 많았다. 워터파크에는 그래도 사람이 적었는데 바다에는 진짜 많았다. 사람의 관심이 쏟아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둘이 선글라스만 쓰고 있었는데 같이 놀자며 말을 걸어온다. 도강재가 또 짖으려고 달려드는데 오늘은 내가 욕 좀 했다. 바다 헌팅 하러 오냐고 우리는 순수하게 쉬려고 온 거라고 화 좀 냈다. 도강재가 오 윤지우 하며 치켜세웠다. 머리도 쓰다듬던데 미친놈. 아니, 잘 놀았으니 만족이다.

 

 

 

점심으로 회를 먹었다. 이번에도 아저씨 카드라며 통 크게 긁는 게 웃겼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회는 잘 모르는데 알아서 척척 품질 좋고 비싼 걸로 시키는 것 같았다. 실제로 맛있기도 했고. 고기만 좋아했는데 해산물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제멋대로 여도 밉지 않아서 좋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즐겁다. 차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최고였다고 엄지 척을 해주는데 진짜 웃겼다. 저것도 재능이지 싶다. 

 

 

 

다음에는 둘이서 바다 가요. 이런 말 하면 싫어할 거 알지만 꼭 데이트 같았단 말이에요. 아 질투는 그만하시고 괴롭히는 것도 관두기. 나중에 우리 둘이서 바다 가면 되잖아요. 같이 잔뜩 놀러 다니고 하는 되지. 우리도 선글라스 쓰고 앉아있어요. 누가 말 걸어오면 애인이라고 철벽도 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요. 최고의 휴가 보내요. 

 

 

 

해장은 잘했나 모르겠어요. 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휴가에 술을 마시고 그래요. 아저씨도 휴가라는 이야기 들었어요. 잘 쉬고 있는 거 맞죠? 제발 몸 좀 사리도록 해요. 술도 조금만 마시고 담배도 끊어보고. 건강하게 나랑 오래 살아아야 할 거 아니에요. 다치지 않게 조심도 하고 고통에 익숙한 건 그만해요, 우리. 

 

 

 

새벽이 생각나서 덧붙여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아저씨는 잘 지내고 있나요? 여기는 아저씨가 구해준 그 집이에요. 우리 꼭 다시 만나요.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보고 싶어요. 새벽에 보내준 문자 고이 간직하면서 지낼게요. 고마워요. 좋아해요, 오늘도. 

 

 

 

D-105

 

체육관에서 나갔던 복싱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매달을 따서 기분이 아주 좋다. 관장님이랑 체육관 사람들이랑 고기를 먹었다. 관장님이 기특하다고 쓰다듬어 주셨다. 칭찬받으니 아주 뿌듯했다. 방학에 쉬지 않고 체육관에 계속 출근한 보람이 있다. 나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걸음 성장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보다 인생이 잘 풀리고 있다. 이제 대학만 잘 붙으면 될 거 같다. 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아저씨를 만날 때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아저씨의 운을 뺏어간 게 아니면 좋겠는데. 우리가 운명은 아니라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기쁜 만큼 리스크가 컸기에 우리는 그냥 끌렸던 거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하루 보내고 있어요? 나쁜 일은 없었어요? 어디 다친 곳은 없고요? 우리의 행복을 빌고 싶은 날이에요. 어떤 아픔도 없었으면 해요. 악운이 우리의 앞길을 막지 않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행복한 날이 가득했으면 해요. 내가 아저씨의 운을 뺏어온 건 아니죠? 아저씨의 운을 뺏어간 거라면 차라리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면 좋겠어요. 아니면 일심동체가 되었으면 해요. 내가 열심히 운을 손에 쥐어볼 테니 우리 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요. 소박하다고 욕할지는 몰라도 내 소원이에요. 가시밭길이 아니라 폭신한 잔디밭을 걸어가는 것, 고통에 익숙하지 않고 행복을 의심하지 않는 것. 우리도 행복하게 살아요. 매일 보고 싶은 날이네요. 다시 만나는 날이 기대돼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어쩔 수 없어요. 반 이상은 걸어온 거니까. 버틴 보상이라고 생각할래요. 시간이 다 가도 사랑해요. 편안하게 푹 잠드세요. 꿈에서 보지 않아도 좋으니 악몽은 피하기로 해요.

 

 

 

D-100

 

다시 바빠지기 전에 한 통 남겨요. 다시 학교를 갈 생각에 머리가 아픕니다. 가기 싫은데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죠? 일찍 일어나서 학교를 가고 의미가 없어진 공부를 하고 굴러가는 쳇바퀴 속에 맞춰서 살아가는 날들, 지루해서 싫은데 학생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고 잔소리가 이어질 상황이네요. 잔소리를 안 들어서 좋기는 했어요. 애 취급도 없어지고 잔소리도 듣지 않아도 좋고 조금은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조금은 말이에요. 회장님이 새로 보내주신 용돈 잘 받았어요. 반은 책을 사는데  쓰고 다른 돈으로는 맛있는 걸 잔뜩 먹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잘 먹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뵐게요. 공부도 열심히 해서 결실을 들고 가겠습니다. 그때에 만나는 걸로 해요. 회장님께 저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8월이 가기 전에 장마가 찾아올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비가 내리는 며칠을 혼자서 보내도 괜찮겠어요? 아플 때 혼자 있는 게 제일 서러운 일인데. 찾아가고 싶어도 어딘지 몰라서 못 갈 거 같아요. 그날은 다 용서할 테니까. 잠시 전화라도 걸어주면 안 될까요? 저도 아저씨를 닮아서 비가 오는 소리와 지나가는 한기에 시린 고통을 느끼게 될 거 같아요. 요즘 컨디션이 안 좋고 그러거든요. 안 좋은 부분만 닮는다, 그죠? 이런 건 닮아서 좋을 거 하나도 없는데 우리는 불행만 나눠가질 운명인가 봐요. 행복은 같이 나누지 못하면서. 슬프네요. 내리는 비가 칼날처럼 느껴지고 창을 흔드는 바람이 뇌를 흔드는 기분,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까요. 아저씨의 기분을 간접처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 고통을 대신 가져가 줄 수 있다면 감히 수명도 떼어줄 텐데 불가능해서 아쉽다.

 

 

 

지금은 아문 상처가 타오르는 것처럼 화끈거리나요? 저는 아저씨를 지우지 못해서 이루어진 방심의 상처, 눈두덩이에 자리 잡았던 멍이 아파지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버림받은 아픔을 반증하는 상사병이 몸을 잠식하게 될까요? 그 아픔을 이해해 보고 싶어서 저도 아플 준비를 하나 봅니다. 사실은 외로워서 아플 거 같아요. 저도 비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덥석 하고 그 전화들을 받았던 거고, 쏟아져오는 몸을 힘겹게 안아들었던 거예요. 아저씨는 몰랐죠? 나도 괜찮은 척했거든, 더 이상 걱정 같은 건 지긋지긋해서 이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니까. 단지 나는 비가 지독하게 싫은 거뿐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요. 전화를 생명줄처럼 쥐고 떨지 않은 척했어요. 나에게도 구명 줄이었는데 나만 당신의 구명 줄인 척했어. 오늘 솔직하게 고백했으니까. 제가 전화 걸어도 될까요? 그럼 받아주실 건가요? 이번에는 아저씨가 들어주시기만 해도 돼요. 저는 혼자서 뭐라도 얘기해 볼게요. 버리지 말아 주세요. 아저씨랑 보낸 장마가 익숙해서 혼자서 보낼 자신이 없어요.

D-94

✉ 아저씨

우리는 죽지 말자. 지겨워도 살자. 부디 살아남아서 네가 말하는 행복 그거 해보자. 그게 뭐 그리 어렵니. 쉽게 가자. 어차피 천국에 못 가는 거 아니까. 죽지 않고 버티자. 혼자서 감내하는 비가 너무 날카롭다. 칼날보다 아픈 거 같아. 이거 정상이니? 난 모르겠다. 이미 괴물이라서.  pm 08:09

 

 

✆ 아저씨

부재중 통화 2건  pm 11:42

​D-93

✆ 아저씨 am 12:11

D-92

 

비가 이렇게 지나가네요. 보고 싶을 거예요. 목소리 듣고 싶을 거예요. 아프지 말고 행복해요, 우리. 죽지 말고 계속. 사랑해요. 그니까 죽지 마.

 

 

 

D-71

 

생존신고. 보고 싶음. 그외 이상 無.

 

 

 

D-50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견우의 노래, 서정주.

 

 

 

우리는 견우와 직녀가 아니지만 이별이 있어야 한다면 받아들일게요. 할 일 하면서 견뎌볼게요. 얼마 안 남았는데 벌써 보고 싶어요. 언제나처럼 보고 싶어요. 좋아해요, 좋아해.

 

 

 

D-30

 

대학에 붙었다는 걸 확인했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다. 사실 조금은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합격 사실을 듣고 울뻔했다. 열심히 노력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무척 뿌듯하고 감격했다. 선생님이 축하한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이번 년에는 이제 쉬면서 아저씨를 기다리는 일만 남은 거 같다. 보고 싶어요. 아직은 졸업은 아니라서 학교도 계속 다니고 복싱도 쉬지 않을 테지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멀리서 나마 응원하고 있었나요? 사실은 첫 번째로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학교라서 그러질 못했네요. 학교 이외의 사람 중에서는 아저씨가 처음이니까 그걸로 만족해요. 이제 더 이상 시련은 없는듯해요. 아저씨는 잘 지내고 있나요? 무슨 문제는 없나요?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요? 걱정이 많아요. 쓸쓸한 가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돌아와요. 이번 겨울도 외로움에 사무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지 않을래요? 1년 다 채우고 만나요. 우리 이번에는 크리스마스도 같이 보내고 한 해를 같이 끝내도록 해요. 새로운 해를 같이 마주 하고 우리는 마주보고 웃기로 해요. 

 

 

 

사실 가을이 꽤나 외로웠어요. 매서워지는 바람이, 길어지는 밤이 외롭고 쓸쓸했어요. 혼자는 죽어도 싫은데 죽을 수 없으니까. 익숙했던 혼자라는 단어가 낯설어진 건 다 아저씨 탓이에요. 전에 이미 늦었다고 말했죠. 함께 하는 게 익숙해졌어요. 혼자가 얼마나 사무치게 외롭고 힘든지 느껴버렸어요. 그런 거 나는 몰랐는데, 이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는데 아저씨가 알려줬어요. 같이 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온기가 얼마나 따뜻한지. 걱정을 받는 게 얼마나 포근하고 기쁜 일인지. 다 아저씨 탓이에요. 책임져주세요. 떨어지는 낙엽을 봐도 아무렇지 않던 마음이 이제는 외로워요. 첫사랑은 떠나고 또 다른 사랑으로 돌아와 주실 장적인가요? 어차피 다 가져갈 거라면 떠나지 말지. 지독한 사람이네요. 부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서 제 마지막 사랑이 되어주세요. 보고 싶어요. 사랑한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초췌한 얼굴보다 건강한 얼굴이 보고 싶으니까. 오늘부터 푹 자기로 약속해요. 잘 자고 다시 만나요. 진짜로 만나는 그날까지.

 

 

 

D-18

 

도시락 감사해요. 아저씨 최고. 그냥 시험만 치러가는 거지만 잘하고 올게요. 걱정하지 않기.

D-15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예고한 대로 편지를 준비했어요. 손으로 직접 쓰는 건 어색하지만 열심히 써볼게요. 어차피 문자로 보내던 그것들과 많이 다르지는 않을 테니. 시간이 가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어요. 아등바등 매달리던 일들이 좋은 결과를 내고 끝났어요. 그리고 우리가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1년 견디느라 무척 힘들었는데, 다시 되돌아봐도 아픈 기억만 가득한데, 잘 견딘 보상은 없나요? 기특하다고 따뜻한 한 마디라도 준비해 주지 않으실래요? 저 진짜 힘냈어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 아는 게 있어서 저는 가만히 기다렸어요. 안 된다고 투정은 조금 부렸지만 부러 아저씨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호텔 정도는 나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데 안 했어요. 

 

 

 

아저씨가 마음대로 혼자 한 약속이라도 악속은 약속이니까. 안 지키기에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혹시 제가 찾아가서 울부짖는다면 정말로 도망쳐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하나 때문에 호텔에서, 그곳에서도 존재를 흔적을 감추고 사라져버릴까 봐. 남을 통한 걱정도 듣지 못할까 봐. 경호하는 아저씨들이랑은 친하지 않지만 도강재가 있어서 가끔 아저씨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어요. 걔는 주로 힘들다며 아저씨 욕을 하기는 했지만 그게 도강재의 방식이니까요. 아저씨는 너무 미련하다면서 걱정의 말을 툭툭 뱉어내기도 해요. 열에 한 번쯤 다쳐오고는 한다는 거 들었어요. 호텔 일이 전부 아저씨의 일인 것처럼 열심이라는 거 아니까. 안 다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듣기만 하니까. 더 고통스럽더라고요. 누구 챙겨주는 사람은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돼요. 매번 혼자서 억지로 참는 게 버릇이 되어서 또 입술만 짓이기면서  고통을 전부 삼켜내고 있을 텐데, 내가 가서 쉬라고 전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괴로웠어요.

 

 

 

닿지 못하는 건 제법 괴로워요. 닿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알지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거, 아저씨가 아픈 만큼 저도 아팠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게 아쉽네요. 모든 고통을 나누어서 완벽히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괴로운지, 또 얼마나 이 고통 속에서 외로이 남겨져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살아온 시간만큼 고통을 참아오는 법을 배웠나요? 어떤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나요? 무턱대고 참는 게 제일 효과가 있던가요? 아니면 다른 방법은 도저히 살아도 모르겠던 건가요? 고통이란 시간이 지나도 아파질 뿐인 건가요? 제게도 알려주세요. 모든 걸 가르쳐주세요. 이해하고 싶어요. 이해할 수 있어요. 이해해 볼게요. 

 

 

 

어느 날 다가올 진짜 이별을 위해서 알려주세요. 너무 외로울 때 어떻게 하면 그걸 견뎌낼 수 있는지. 좀 더 아프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지. 인생을 껶어나가는 수밖에 없던가요? 아무렇지 않게 고통에 둔해질 수 있도록, 버티는 수밖에 없던 가요? 신은 매정하고 잔인한 존재일 뿐이니까요. 진정 자비로운 분이시라면 처음부터 이런 고난에 저를 던지시면 안 되죠. 제가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 얼마나 괴로운 인생을 살았는데, 혼자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단지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사는 인생이었어요.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걷고 가끔은 웃어가면서 살았는데 그냥 사는 게 힘들었어요.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오래 산 것도 아니면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웃기죠. 지금은 괜찮으니까, 아팠구나 하고 생각해 주세요. 그 정도만 해주세요. 그리고 가르쳐주세요. 아저씨가 없는 그 미래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는 일 빼고 다른 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저씨가 없는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아저씨가 생각했어요. 어디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했어요.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했어요. 길을 걷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아저씨가 생각났어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아저씨를 생각했어요. 휴가에는 무엇을 하고 지내는가부터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하는 정말 사소하고 작은 것들까지 궁금해요. 매일 아저씨 생각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나는 아저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 물론 아저씨도 나에 대해서 모든 걸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아는 게 아예 없거든요. 질문만, 궁금증만 가득하고 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몰라서 더 보고 싶었어요. 내가 고작 아는 건 아저씨의 웃은 얼굴이 보기 좋다는 거, 그리고 제게만 보여주는 고통에 한 얼굴은 볼수록 마음이 아프다는 거, 이 정도라서 초라했어요. 나는 아저씨를 사랑하는데 아는 게 없어서, 바보 같은 사랑만 했다는 걸 깨달아서.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나도 여기 있다는 거, 나는 이렇다는 거, 아저씨 얘기는 왜 조금도 해주지 않았어요? 

 

 

 

우리가 다시 만나면, 1년이 꼬박 지나고 만나면 말해주세요. 다 알려주세요. 모든 질문의 답을 해주세요.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만들게요.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릴게요. 우리는 이제 함께할 테니까.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요.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있을게요. 못 본 만큼 많이 볼게요. 나중이라도 좋아요, 느려도 괜찮아요. 그니까 부디 알려주세요. 제 사랑은 기다려야 하는 사랑인가 봐요. 품에 안기 전에 인내가 필요한 그런 사랑. 아직 사랑하니까, 사랑하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제 사랑은 죽지 않을 거예요. 여기 살아서 심장박동으로 살아있다는 걸 표현하고 있잖아요. 그니까 돌아와서 전부 말해주세요. 질문의 대답부터, 못다 한 사랑한다는, 보고 싶었다는 숨겨온 말들을. 그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보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도, 지날수록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사랑할 거예요. 아저씨의 일상을 제게 주세요. 함께 행복을 연주해요. 우리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요. 그러기로 해요. 약속해 주세요. 대답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낼게요.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지 말고 조금이라도 주무세요. 다음에는 제 온기를 나눠줄게요. 오늘은 특별하게 꿈에서 만나요. 

 

 

 

2019.11.19 나의 아저씨에게

 

윤지우가

D-6

 

시간이 좀 더 빨리 흘렀으면, 오늘도 사랑해요. 

 

 

 

D-5

 

새벽은 너무 외로워요.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해서 세상이 너무 추워요. 혼자서 견디기에는 바람이 매서워서 그럴 수 없어요. 우리 다시 만나면 그날은 먼저 안아주실래요? 온기가 그리웠어요. 남들보다 체온이 낮다던 그 몸의 온기가 저는 따뜻해서 좋았어요. 품에 안겨있으면 다 괜찮은 거 같았어요. 모든 걸 다 가려줄 거 같아서 좋았어요. 다시 안아주세요. 물먹은 솜처럼 쳐지는 몸을 끌어안고 괜찮다고 해주세요. 이제 내가 왔다고 해주세요. 그 존재만으로 저는 숨을 쉴 수 있을 테니까. 그것만 해주세요.

 

 

 

D-2

 

전에는 억울해서 잘 수 없었는데 이제 기대가 되어서 잘 수 없어요. 우리가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아저씨의 얼굴이 보고 싶어요.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요. 예쁘게 웃어줘야 하는데 우는 거 아닌가 몰라요.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기뻐서 울 거 같아요. 외로웠던 시간들이, 반가운 마음이 한 군데 모여서 와르르 넘쳐흐릴 거 같아요. 울어도 이해해 주실 거죠? 이 정도는 이해해 주세요. 1년을 견뎠는데 어리광은 부릴 수 있게 해줘야죠. 저 아직 어른이 아니라 아이니까. 아저씨가 견뎌요. 

 

 

 

사랑해요. 마음을 참고 잠에 들도록 할게요. 아저씨도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자도록 해요. 일보다 몸을 생각해 주세요. 아저씨 몸은 제 소유이기도 하니까. 잘 다뤄주세요. 아프면 안 돼요. 건강한 모습을 보여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 자요, 나의 사랑.

 

 

 

D-1

생일 축하해, 윤지우.

 

생일이라는 거 깜빡하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기억하고 계셨네요? 아침에 놀랐어요. 문고리에 종이가방이 걸려있어서 짧지만 직접 편지도 써주고 고마워요. 향수랑 장미 잘 받았어요. 꽃은 예쁘게 병에 꽂아뒀어요. 향수도 잘 쓸게요. 내일 아저씨 만나러 갈 때 뿌리고 갈게요. 저는 향수 잘 모르는데 이거 향기 좋은 거 같아요. 첫 향수니까 질리도록 쓸게요. 진짜 고마워요, 최고의 선물이에요. 내일 만나서 한 번 더 얘기해 주세요. 저는 그거면 돼요.

 

 

 

D-Day

 

드디어 오늘.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이따가 만나요.

✉ 회장님

잘 지냈니. 학교 앞이다. 천천히 나와라.  pm 04:30

✉ 아저씨

故 정태주님께서 12월 1일 11시 별세하셨음을 삼가 알립니다. 가시는 길에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빌어주시길 바랍니다.  pm 04:32

✉ 도강재(미친개)

故 도강재님께서 11월 29일 별세하셨음을 삼가 알립니다. 가시는 길에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빌어주시길 바랍니다.  pm 04:33

거짓말쟁이. 정태주 거짓말쟁이.

 

D+10

 

말도 없이 떠나는 게 어디에 있나요? 거짓말쟁이. 언제까지 죄인일 생각이에요? 아저씨는 정말 너무해요. 그렇게 빨리 갈 이유가 있어나요? 나랑 좀만 더 있다가 가주지. 기뻐서 눈물이 흐릴 줄 알았는데 슬퍼서, 놀라서 울었어요. 회장님을 만나서 사실이냐고 물었어요. 근데 진짜, 진짜로 사실이라서 무너져내렸어요. 세상이 너무 가혹하잖아요. 이러는 게 어딨어. 신이 존재하기는 한데요? 저는 없는 거 같은데 있으면 이럴 수가 없지. 내 일이 잘 풀리던 게 이러려고 그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바다 가자고 했는데 이러고 올 줄을 몰랐어요. 사랑도 우정도 전부 빼앗길 줄은.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없는 부랑자로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고요.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거기서라도 행복해요. 이제는 고통 받는 일 없이 편하게 쉬세요. 바쁘게 지내느라 못 잔 잠도 다 자고 버티고 견디느라 성할 곳 없는 몸도 이제는 편하게 해놓고 푹 쉬세요. 거기서는 그럴 자격 있을 거 아니에요. 다시 고통 받지 말고 잘 살아주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할게요. 다시 말할게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또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볼 작정이에요. 바로 따라가는 건 아저씨가 바라는 일이 아닐 테니까. 조금이라도 더 생명선을 연장하다가 거기로 갈게요. 너무 외로워 마세요. 거기 가서 질문의 대답은 다 들을게요. 아저씨는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보고 싶다는 말로 헤아려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말이 시시할 정도로. 보고 싶고 사랑해요. 언젠가 만나면 아저씨 목소리로 들려주세요.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다시 보러 올게요. 잘 지내요. 사랑해요, 사랑해.

 

 

 

D+365

아저씨 잘 지내요? 저는 잘 지내요. 사실 잘 지낸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안 죽고 살고 있잖아요. 좀 봐주세요. 아저씨 따라가겠다고 소리는 안 지르잖아요.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만 해요. 보고 싶다, 그 정도? 사랑한다고, 딱 그 정도. 1년만 기다려달라는 그런 약속이 2년이 되어버렸네요. 지키지 못한 약속이 아저씨 발목이 아니라 내 발목을 감아서 평생을 아프게 하겠죠.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고 변명할게요. 첫사랑이 꽤나 지독해서 잊을 수 없는 병에, 상사병에 걸려서 사는 거라고 전할게요. 

 

 

 

또 한 번 크리스마스도 연말도 새해도 혼자서 보냈어요. 혼자는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다들 손을 잡고 걷는데 나만 혼자서 외롭게 남겨진 게 그렇게 처량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혼자인 사람을 보고 위안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거나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고. 물론 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이잖아요. 아니 옆에 다가와도 알아볼 수 없는 사람. 옆에서 위로를 해줘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 그리고 사랑. 받을 사람이 없는 사랑, 혼자서 하는 사랑.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는데 혼자 남아버린 가여운 내 사랑. 얘도 짝이 없어서 어떡해요.

 

 

 

내 인생 너무 기구해졌나 싶어요. 생일도 혼자 보냈어요. 나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지나가 있었어요. 생일 같은 거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인생을 살았는데, 아저씨가, 회장님이, 도강재가 신경 쓰게 만들었던 거였죠. 단출한 파티라고 할 것도 없는 하루들을 보냈지만 그거라도 좋았어요. 누구한테 제대로 축하받아본 적이 없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사는 게 너무 고돼서 아무도 안 챙겨줬거든요. 나는 그럴 여유도 없었고. 혼자 생일을 챙길 일이 뭐가 있어요. 더 외롭기만 하지. 아저씨가 보내준 꽃은 시들어서 없지만 늦게라도 그 꽃과 비슷한 꽃을 한 송이 사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처음 선물 받은 향수를 꺼내서 혼자 뿌려보면서 추억을 회상해요. 추억은 그나마 빛바래지 않고 남아있어서요. 그거로 위안을 삼고 있어요. 살아야 하는 이유에 그 향수가 첫 번째로 들어있어요. 아까워서 자주 뿌리지도 않고 거의 관상용이 되고 있어요. 내년에는 똑같은 향수를 하나 사서 그건 뿌리고 다닐까 생각 중이에요. 아저씨가 준 건 아까워서 못 뿌려요. 본질을 잃었지만 어쩔 수 없죠.

 

 

 

어떻게 다들 나를 줄줄이 떠나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거라지만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잔인하고 매정한 신, 다시는 기도 같은 거 안 해요, 빈말로도. 그나마 회장님은 만났었는데 바로 우리 아저씨 보러 갔고, 도강재는 얼굴도 못 보고 보내줬어요. 나는 걔 죽은 것도 모르고 생일이라고 좋아했던 거잖아요. 그게 너무 미안해요. 우리 우정이 그렇게 가벼웠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괴로워요. 날 걱정해서 뒤늦게 알렸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제일 서러운 건 내 사랑을 보낸 거예요. 만날 생각을 하면서 즐거워했는데 그날 죽는 게 어디 있나요. 못 지킬 말만 하는 그런 사람.  밉지만 그래도 사랑해요.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르겠어요. 이미 망한 사랑이고 인생이야, 이 정도는 버티면서 살아볼게요.

결국 혼자서 버티는 법도 안 알려주고 떠난 그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곱씹고 또 곱씹어도 없어지지가 않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은 너무 많이 해서 닳아버린 듯합니다. 좋아한다는 말은 진부해서 또 해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고 싶다는 사람은 많이 보셨나요? 거기서 잘 살고 계시나요? 더 이상 비오는 날에도 아프지 않으신가요? 몸에 가득하던 상처를 다 떠내보셨나요? 새벽에 악몽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닦는 일은 없나요? 전부 괜찮다는 말이 대답이었으면 하네요. 괜찮다는 예의, 그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그런 말이요. 저는 그 대답이면 충분해요. 어떻게든 잘 살아볼 거예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고 해요. 죽는 건 괜한 어리광이라고 생각해서요. 피워봤자 좋은 것도 없고 그냥 어떻게든 살아서 뭐라도 남기고 죽으려고요. 세상에 남긴 건 시체와 의미 없는 돈뿐인 제 사랑, 그리고 우정을 대신해서 저는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살다가 가보려고 해요. 아직 그렇다고 할 목표는 없지만 좀 거창하게 살아볼까 합니다. 거진 일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이유는 경찰이 되려고 열심히 살았어요. 지옥, 또는 진흙 바닥에서 구르던 삶이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래서 값비싼 보석인 척 좀 해보려고 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고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일단 뭐라도 해볼까 하고 가능성이 있는 걸 고른 거죠. 몸 성치 않게 굴릴 생각인데 덜 다치라고 거기서 좀 빌어주고 그래요. 나 멋진 경찰 될게요,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아, 아무것도 안 남기고 간 거 서러울까 봐. 사실은 내가 서러워서. 내 몸에 새겼어요, 그 이름들. 잘 보이는 자리에, 대신 남들은 못 알아보는 모양으로. 경찰 중에는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만 아는 비밀을 만들었어요. 잊지 않으려고 반지도 여러 개 사서 하고 다니는 중이에요. 잊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고 있어요. 추억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인데 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버티는 방법을 골랐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저씨가 맞춰둔 반지 제가 받았어요. 이거 우리한테 무척 잘 어울렸겠다. 아저씨 손에 딱인데, 아쉽네요. 주인 없는 반지를 목에 두르고 사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저를 좀 더 사랑스럽게 봐주세요. 사랑 말고 남은 게 없는 인생을 초라하지 않게 해주세요.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을 거예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다음에는 울지 않고 웃다가 갈게요. 경찰 제복을 입고 찾아오고 그럴게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의 끝에 나를 걸고 한 번은 꼭 생각해 주세요. 더 이상 죽지 않는 나의 연인, 사랑해요.

 

 

 

2020.12.01 나의 첫사랑에게, 나의 끝사랑에게.

 

당신의 영원한 연인이.

© 2021 兩價感情.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