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in Aquarium, Aqua man
: 정태주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하여
@yoncé(naedaegariggae)
정태주. 그래봤자 깡패 새끼인 주제에 유명인사인 놈. 열아홉인데 2년 늦게 학교에 들어와 온갖 소문 다 달고 있는 놈. 꼴에 꽤 생기고 공부도 잘해서 인기 많은 놈. 그러나 윤지우한테 저당 잡혀 따까리로 전락한 불쌍한 놈.
아빠는 뭘 바라고 저놈을 내 옆에 붙여다 놨을까. 동천파 특유의 마초적 분위기는 유난히 지우에게만 유했다. 그야말로 공주님, 청정구역.
-윤지우, 어느새 방년 십칠세.
현재, 방향을 잘못잡아도 한참 잘못잡은 동천파의 윤지우 케어법은 과보호와 수많은 간섭,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감시였다.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은 통제된 상황과 사람들의 관심에 그렇게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던데. 윤지우는 이러다간 정말로 자기가 커다란 어항 안에 갇힌 물고기 따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서 비늘이 돋고, 다리가 사라지고 꼬리가 자라나는 상상을 했다.
질겅질겅 껌을 씹는 윤지우의 턱 힘이 점점 거세졌다.
***
아빠는 항상 정태주를 왜 그렇게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동천파에 너만한 또래 친구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냐며 허허실실 웃는 아빠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도 벌써 삼년 전의 일이었다.
... 그러게요, 왜 싫을까. 정태주는 오직 윤지우를 위해 검정고시로 패스한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배우는 거였다. 온전히 나를 위한 희생, 그러니까 시간 낭비. 그렇다면 내가 고마워해야 하나?
완연한 여름이라 보기엔 좀 그렇지만 가을이라기에는 무더운 날씨. 껌 따위 말고 시원한게 필요했다. 시원한 거, 내 막힌 기분과 머리를 뚫어줄 시원한 거.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두 뼘 떨어진 자리에 정태주가 있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입에는 어느새 녹아 말랑말랑해진 빠삐코 하나를 물고, 껍질을 벗기지도 않은 빠삐코 하나는 손에 들고. 날붙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갖고 있지 않지만, 새끼 범도 범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태주도 역시 조폭은 조폭이었다. 음, 잘생겼네 뭐네 이야기가 도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잘생기기는 개뿔, 생긴게 딱 깡패구만. 저 혼자 고고한 정태주를 향한 여름날의 질투였다.
아, 생김새를 논하자니 삼년 전 아빠의 질문에 주먹과 함께 던졌던 답변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걔 무서워, 무섭다니까?!’
참 어렸지, 그딴 말로 변명이 될 거라 생각하다니. 이래 봬도 보고 자란게 깡패 뿐인데, 설마 웬만한 안면에 이 윤지우가 쫄까. 당연히 아빠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 대답은 아빠의 머리 속에 지우가 정태주가 아닌, 이 바닥에서 피어나는 갖은 위협을 두려워한다는 굳센 오해를 심어 버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몇 개월 전, 다 너를 위한 거야라며 정태주를 고등학교 입학식에 들려보내더니. 입학식 때, 정태주의 코트 안에 단정히 걸쳐져 있는 교복을 확인한 심정이란...
악바리처럼 ‘아 미쳤어 내가 애야? 나도 내 몸 간수할 줄 알아!’를 외쳐도,
응 그건 네 생각이고, 라며 단번에 제 의견을 일축해 버린 아빠의 입장을 지우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태초부터 윤지우는 야들야들한 여학생들과는 달랐다. 이 지구촌을 뒤져봐도 마약조직 2인자 아빠를 둔 여고딩은 흔치 않을거다. 뉴스와 드라마,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제 현실이라 이거다. 남들과 달리 제 장르가 꼬꼬무 같은 다큐인거, 이미 중학생 때 받아들였고 이제는 상관없었다 아마도.
납치 협박이나 경찰의 회유, 비난따위도 몇 번 받아봤는데 확실히 별거 아니었다 아마도.
중학교에 소문이 쫙 퍼져서 몇 번 전학다닌 것도 나름 괜찮았었다 아마도.
혼자 밥먹고 뽕쟁이네 뭐네 소리 듣는 것도 뭐... 아마도?
조직이 이런 내 (평범한 기준을 벗어난) 평범한 일상에 유감이라는 반응을 띠고 있는 건 알았다. 그래서 더욱 잘해줬던 거니까.
펜트하우스에 드러누울 수 있는 것도, 변호사님을 찾아가 엄마한테 굴 듯이 짜증과 아양을 부려도 포용해주는 것도 이런 측은함에서 오는 배려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걸 즐겼다. 동천파의 모든 어른들은 내 아빠였고, 내 엄마였으니까.
다만, 정태주는 내 아빠도 엄마도 될 수 없다. 기껏해봐야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다, 저놈한테는 그런... 짓이란 거 하고싶지 않다. 다른 걸 한다면 몰라. 뭐 묵묵히 곁을 지키는 타입, 사람들은 좋아라 하던데 막상 한 공간에 있으면 죽을 맛인 거 사람들은 다 알아야 한다. 고로 정정한다, 정태주는 곁에 두기만 하면 숨이 막히는 타입인 거다. 그리고 사실 같이 있으면 숨이 막히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굳이 인정하고 싶진 않다.
좌우간에 미안함에서 나오는 금이야 옥이야 취급, 아무래도 좋다 이거다. 싸고 돌고 예뻐해주는 거? 완전 좋다. 근데 왜 내게 직접 줄 관심과 보호를 정태주로 대신해 버리는 건데? 왜 내 보호를 정태주의 사명따위로 부과해버리는 건데?
조작된 평화, 의도된 안정. 오히려 그런게 평범한 일상과의 간극을 벌리고 있음을 아빠가 정말 모른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래,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평범을 추구하기 위해서 끝없는 감시를 동반해야 하는 삶, 또는 감시를 포기함으로써 평범, 일상을 위협받는 삶.
평범과 일상의 기준이 남다르다보니, 어느 것이 더 나은 선택지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정도는 희미하지만 저는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딱 중간의 것을 원했다. 욕심쟁이다, 역시.
물론 그 중간이란 거 절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왜 다들 내 마음을 몰라줘? 암만 사춘기래도 그렇지, 호르몬의 들쭉날쭉과 2차 성징은 마무리될 나이인데. 그렇게 내 마음을 예측하는 게 어려워? 한순간 울컥하는 감정으로 인해서 모든 걸 거부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단 말이야. 나는 내가 추구하는 중간이 딱 몇 개월 전의 당신네들의 보살핌과 애정,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 또 울컥한다. 젠장.
자라오면서 손발 없는 공주 취급은 많이 받아오지 않았는가. 정태주도 그 공주놀이의 일환이라고 치환해버리면 차라리 마음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불쑥 반항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저놈은 절대 내가 느꼈던 포근함을 줄 수 없어. 저놈 하나로는 가족같은 분위기를 대체할 수 없어. 쟤는, 쟤도 좋지만 쟤만으로는 싫단 말이야.
윤지우는 다리를 그러모았다. 속옷이 보이든 말든 알아서 하라지. 푸르게 깔린 잔디와 울고 있는 매미. 눈물이 얇게 고이는 바람에 뿌얘지는 시야. 땀이 조금 흘러 눈도 따갑다. 물안경을 쓰지 않고 물 안에 들어가면 이런 기분일까. 지우는 오늘도 자신이 물에 사는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땅이 아니라 물에서 사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리고 역시 나는 한군데 모아두는 게 좋아. 사랑이든, 물고기든.
그렇다고 해서 정태주도 무조건 나의 어느 한켠에 모아두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말이다. 옆에 정태주를 대롱대롱 달고 다니는 삶은 피곤하거든. 양산형 가십과 루머의 주인공인 건 저나 정태주나 둘 다 마찬가지인데, 왜 저 눈초리들은 하나 같이 제게만 적대적인 걸까. 같은 깡패라고 해도, 윤지우가 하면 범죄고 정태주가 하면 장르물이냐? 웃겨 진짜.
지금만 해도 애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이 와중에도 정태주는 열심히 아래로의 시선을 피하며 제 무릎에 하복셔츠 따위를 덮어주고 있었다. 살갗 한 번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민망해하는 저 놈의 귀는 누가 붉게 만든 걸까. 날까, 날씨일까.
정태주를 포함한 모든 동천파가 저를 깨질 것 같은 유리공예품 취급하지만, 그것도 어릴 때 한때로 끝났어야 했다. 십칠세 고딩을 아기 공주님 취급하는 건 진심으로 유난이다.
정태주, 네가 아무리 날 조심히 다뤄봤자 나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첫 술을 깠고, 담배 취향은 말보로 레드다. 공주가 아니라 개망나니란 거지.
이런 일탈은 아마 아무도 모를거다. 그리고 평생 모를거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통제와 보호 하에 있어야 하는 조직이 어떻게 그런 변수를 인식할까. 나도 결국엔 평범한 관리대상 중 하나니까. 젠장, 평범을 이런 곳에서 찾고 싶진 않았는데. 어쨌든 풀이 넓고 관리할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파악할 수 있는 디테일은 떨어지는 법이다.
솔직히 직설적으로 말할까. 이래서 정태주가 싫은 거다. 붙여놓은 이유는 아무래도 필요없다. 정태주를 볼 때마다 동천파에게 윤지우는 결국에 허울만 좋은 신줏단지, 디테일을 알 필요없는, 그저 조직이 보호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아서. 잔챙이는 되기 싫단 말이다.
그래서 늘 기분이 더럽다. 마음대로 아꼈으면서, 또 마음대로 방생하는 것 같다. 아니 하나만 하란 말이야, 하나만.
나는 관상용, 보호용도로 아쿠아리움에 입주해있는 물고기가 아니라니까. 길들이고 키웠으면, 그에 걸맞게 사랑을 주란 말이야. 나는 알아서 먹고 자고 크는 존재가 아니라고.
***
“청승 작작 떨지?”
“......뭐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알겠는데, 내가 이렇게 네 따까리 노릇하고 있는 거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이 안되냐?”
알아, 안다고. 아빠가 너랑 나를 붙여둔 뒤부터 연락이 잘 안되는 것도. 그래서 허구한 날 네가 날을 곤두세우는 것도. 근데 말이야. 나는 그럼 어떤 세계에 속해야 해. 모두가 내가 최대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자랐으면 했잖아. 근데 너는 왜 나더러 내 기준과 세계를 깨라고 해. 다들 내가 이 상태로 있기를 바라잖아. 오직 너만 그래, 너만 내 주제와 현실을 파악하라고 해. 내게 허락되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선을 그어버려.
그래서 너를 미워하지 않고는, 너를 밀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버려진 것 같아. 거봐. 너는 이게 겨우 청승으로밖에 안 보이지?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세계에서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란 말이야. 이렇게 성큼 다가온 위험에 불안해하고, 이걸 팔아 나는 사랑을 얻고. 이게 내가 자라온 어항이고, 어항 속 생존법이란 말이야.
“너 진짜 싫어.”
“알아.”
어항 속 물고기가 아니라 어항이 되고 싶다. 어항의 주인이 되고 싶다. 아무도 나의 것들을 뺏어가지 못하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게. 정말로 완전한 어항.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들로 채우게.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근데 있잖아. 난 너 좋아하는데.”
아 저 새끼는 정말 달에서 왔을 거다. 나는 지구란 별에 사는데, 정태주 저놈이야말로 별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네가 싫어, 싫다니까. 싫다는데 왜 넌 나를 좋아하는 건데. 반사된 빛을 토해내는 달의 심정으로 일방적인 따스함을 토해내는 너의 심정은 도대체가 이해하기 싫다. 결코 머리의 생각과 달리 마음은 너를 향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싫은 건 아니다.
너만으로도 내가 그동안 살아온 어항 속 생존법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쓸데없고 무모한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이해하기 싫은 건 절대 아닐 거라고.
정태주는 두려운게 없는 것 같았다. 열일곱의 윤지우는 정태주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사실은 아주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일어날 백오십칠 가지의 경우와 결말에 대해 매일 생각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단 한 가지의 결말로만 귀결되었다. 악착같이 숨기는 것으로.
소중한 것이 생기는 것은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걸 윤지우는 모르지 않았다. 삼년 전부터 풋풋한 눈길로 힐끗대던 정태주가 제 옆에 딱 달라붙게 되는 날이 오자마자, 아빠의 소식이 드문드문해지지 않았는가. 아마 이 정태주를 온전히 제 어항에 넣고 키우며 행복해 하다보면, 제 아빠든지 다른 누구든지 어쨌든 누군가의 존재감이 흐려지고 지워지고... 어쩌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몰랐다.
너를 가진다면, 내가 어항의 주인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나는 그럼에도 어느 어항이든 속하고 싶은 물고기라서. 그래서 나는 너를 싫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래. 이게 표면적으로 내려진 결론이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항에도 속하고, 어항도 갖고 싶은 그런 욕심쟁이가 되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그러면 벌 받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충동인거야. 진심 아닌 충동으로 꺼낸 말인 거다?
“우리 잘래?”
몇 번이고 말했지만, 윤지우는 욕심이 많다. 아빠를 포함한 동천파도 정태주도, 모두 가지고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온전히 가지기에는 불안하니까, 그러면 슬쩍슬쩍 가지면 되지 않을까. 운명의 창조주가 눈치채지 않을정도로 조금씩만.
엔돌핀, 도파민 따위가 물고기에게도 있을까? 물고기 주제에 절절하고 낭만적인 사랑의 도피따위를 하고 싶지는 않았고, 고작 진심따위로 평생을 바란 안온함을 망치기는 더 싫었다. 늘상 그림자와 핏자국이 따라붙는 세계에 속한 주제에, 어줍잖은 감정으로 모든 것을 잃어가며 평화로움을 위협받아야 할까.
근데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네들의 감정을 외면하기에는, 자신이나 저놈이나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물에서 뛰노는 존재들이라서. 몇 년을 갈아버렸던 감정은 무뎌지기는커녕, 더욱 더 날카로워져서 도리어 내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어서. 목마르다는 듯이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에 제 살이 뚫려 종내에는 가시뿐이 안 남을 것 같아서...
차라리 정말로 제가 물고기라서 아가미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윤지우는 정태주마저도 없으면 숨구멍이 없어서, 차라리 이렇게 비겁하게라도 안정을 찾고 싶었다.
푸르게 달궈지는 운동장을 식히기 위한 물줄기가 스프링쿨러에서 뿜어져 나온다. 얇다란 물줄기가 스스슷 튀겨온다. 조금씩 젖어간다.
옷이 젖었는데, 마음이 젖는 느낌이었다. 아 젠장할, 익사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저 입에서는 무슨 대답이 튀어나올까. 기꺼이 내 어항으로의 입장? 아니면 속한 적도 없는 어항에서의 탈출?
정태주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손에 들려있던 아이스크림은 언제 떨어졌는지 발치에서 끈적한 초콜릿 냄새를 풍기면서 울컥울컥 그 내용물을 내보내고 있다.
아 눈빛이 마주친다. 네 무던한 그 눈빛은 무슨 대답을 담고 있는 걸까. 감히 재단하긴 겁이 나니까. 그냥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면 좋겠다.
기꺼이 내 어항에 속해주겠다는, 기꺼이 어항 속에서 헤매여주겠다는 그런 류의 비슷한 답변 말이다. 내가 너를 버려도 너는 나를 버리지 못하도록 어항 속에 꽁꽁 가둬둘 수 있도록.